top of page

2025. 9. 13. - 9. 27.

STARTER PACK PROJECT #5 : DIFFRACTION

참여 작가 : 황현덕
주최/주관 : 위버멘쉬 프로젝트, 스페이스 위버멘쉬
기획 : 김도플
서문 및 비평 : 이보성

부산에서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의 시작점에 지역 전시 공간이 무엇을 도울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스타터 팩 프로젝트 (STARTER PACK PROJECT) 의 다섯 번째 전시입니다.
‘스타터 팩’은 게임 용어에서 비롯되었으며, 신규 플레이어가 게임을 시작하고 실행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설계된 프로그램을 뜻합니다. 게임 초반에 플레이어가 더 빨리 적응하고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입니다.
스페이스 위버멘쉬는 젊은 작가의 개인전을 지원함으로써, 작가가 자신의 작품과 공간, 그리고 지역 아트 커뮤니티에 보다 쉽게 적응하고 생존하는 과정에 익숙해지도록 돕고자 합니다.
본 프로젝트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 또는 기획자의 추천을 받아 운영되며, 2025년에는 상반기 1명과 하반기 2명의 개인전을 지원합니다.

2025년 스타터 팩 프로젝트 하반기 참여 작가는 황현덕입니다.


회화, 끊임없이 흔들리고 어긋나는
이보성 (미술이론)

황현덕(1985~)은 청주에서 태어나 한남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한 뒤 독일 뮌헨조형예술대학교에서 수학했다. 그는 회화를 기반으로 하지만, 설치와 퍼포먼스로 작업을 확장하며 매체적 스펙트럼을 넓혀왔다. 그러나 이러한 확장은 회화를 부정하거나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다. 설치와 퍼포먼스 또한 회화적 사유가 다른 감각적 장치로 옮겨진 결과물이며, 그의 작업 중심에는 여전히 화면이 놓여 있다.

독일 유학은 그의 예술 세계를 근본적으로 전환시킨 사건이었다. 낯선 언어와 환경 속에서 학업을 이어가며, 동시에 물류 노동자로서 포장과 이동, 해체와 재조립의 과정을 반복 경험한 그는 오류와 불완전성이 삶의 일상적 조건임을 몸소 체득했다. 불완전함은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예술을 지탱하는 조건이 되었다. 이후 그의 회화와 설치 전반에 나타나는 균열, 잔여, 미끄러짐은 바로 이 시기 축적된 경험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황현덕의 회화는 대상을 재현하기보다 흔적과 경계, 사라짐과 남겨짐의 과정을 화면 위에 호출한다. 이때 핵심은 레이어링이다. 한 겹 위에 또 그리기를 거듭하지만, 이전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지 않고 투명하게 남겨 서로를 비추게 한다. 화면은 물질적으로 두껍지 않다. 물감의 덩어리감이 전면에 드러나는 대신, 얇고 투명한 층들이 중첩되며 시간의 켜와 기억의 잔상을 환기한다. 그의 회화는 물질적 두께가 아니라, 겹겹이 쌓이면서도 사라지지 않는 불완전한 시간성으로 정의된다. 그러나 이러한 투명성과 시간성은 단순한 미학적 실험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곧 ‘회화의 생명력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전면에 배치하는 행위다.

이러한 태도는 독일에서 접한 예술 환경과도 간접적으로 공명한다. 그의 지도교수였던 마쿠스 외엘렌(Markus Oehlen)은 네오표현주의의 주요 인물로, 음악·설치·디지털 이미지를 넘나들며 회화의 규율을 해체했다. 황현덕은 이를 직접 모방하지는 않지만, 매체 혼종성과 비완결적 과정을 긍정하는 태도에서 일정한 접점을 보인다. 다만 외엘렌이 사회적 권위와 제도를 파열하는 방식으로 불완전성을 전개했다면, 황현덕은 개인적 경험—노동의 신체성, 언어적 불안정성—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즉, 사회적 저항의 차원에서 발현되던 불완전성이 황현덕에게서는 개인적 삶의 조건으로 전환된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회화가 드러내는 어긋남과 균열이 날카로운 사회적 비판으로 나아가기보다 화면 내부의 미학적 전략으로 머물 수 있다는 점은 여전히 비평적 과제로 남는다.

이번 한국 첫 개인전 《에돌이 현상》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에돌이’란 파동이 장애물에 부딪히며 회절해, 그림자 부분에까지 전파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작가는 이를 “원본이 이동하는 과정에서 변형되는 음향, 의미, 이미지”에 빗대어 전시의 제목으로 삼았다. 전시에서 회화, 설치, 사운드, 관객 참여는 서로 간섭하며, 질문과 응답이 어긋나는 순간, 언어 이전의 감각이 호출된다. 관객이 제출한 짧은 글은 노이즈로 변환되어 울려 퍼지는데, 이는 의미 전달의 실패가 아니라 충동적 발화이자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이다. 또한 물류 노동 시절 다루었던 스티로폼 포장재를 스피커 조각으로 전환한 작업은 개인적 경험을 예술적 구조물로 치환하며, 곤충의 고치처럼 불완전한 변태의 과정을 드러낸다. 전시 전체는 파동이 장애물을 비켜나 새로운 궤적을 만들어내듯, 회화적 사유가 다른 매체를 관통하며 변형되는 과정을 탐구한다.

황현덕의 전략은 그의 스승이 그러했듯 네오다다와 네오표현주의의 맥락과도 맞닿아 있다. 해럴드 로젠버그(Harold Rosenberg)가 지적했듯, 네오다다는 작품의 완결성보다 사건(event)과 실패의 생산성을 중시했다. 알란 카프로(Allan Kaprow) 또한 실수와 우연을 예술의 본질로 규정하며, 다다적 태도를 옹호했다. 황현덕의 레이어링과 설치적 실험은 이 전통을 동시대적으로 변주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네오다다를 승계했다고 일컬어지는 김구림 세대와 그는 또 다르다. 1960–70년대 실험미술이 회화 바깥으로 탈주하며 제도와 권위에 저항했다면, 황현덕은 회화를 결코 버리지 않는다. 그는 반복과 오류, 투명한 흔적의 레이어를 통해 회화를 재사유하며, 설치와 퍼포먼스를 회화적 사고의 확장으로 활용한다. 이는 탈회화 이후 다시 회화의 가능성을 묻는 동시대 한국 회화의 흐름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결국 황현덕의 작업은 흔적과 파동이 겹쳐지며 남기는 시간성을 통해 회화의 생명력을 다시 묻는다. 고정된 이미지가 아니라 끊임없이 흔들리고 어긋나며, 때로는 장애물을 비켜나 새로운 궤적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야말로 살아 있는 회화의 조건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상반된 전망을 동시에 본다. 한편으로 그의 회화는 불완전성과 어긋남을 매개로 회화의 의미를 새롭게 쓰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른 한편, 그것이 화면 내부의 자족적 실험에 머문다면 동시대적 담론과의 긴장을 놓칠 위험 또한 안고 있다. 바로 이 양가성 속에서 황현덕의 작업은 앞으로 풀어야 할 비평적 과제를 남긴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