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ACEÜBERMENSCH
2025. 11. 1. - 11. 15.
STATERPACK PROJECT #6 : PROJECT : TLT
참여 작가 : 이지영
기획 : 김도플
주최 / 주관 : 위버멘쉬 프로젝트 / 스페이스 위버멘쉬
글 : 김도플
부산에서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의 시작점에 지역 전시 공간이 무엇을 도울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 스타터 팩 프로젝트 (STARTER PACK PROJECT) 의 다섯 번째 전시입니다. ‘스타터 팩’은 게임 용어에서 비롯되었으며, 신규 플레이어가 게임을 시작하고 실행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설계된 프로그램을 뜻합니다. 게임 초반에 플레이어가 더 빨리 적응하고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입니다.
스페이스 위버멘쉬는 젊은 작가의 개인전을 지원함으로써, 작가가 자신의 작품과 공간, 그리고 지역 아트 커뮤니티에 보다 쉽게 적응하고 생존하는 과정에 익숙해지도록 돕고자 합니다. 본 프로젝트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 또는 기획자의 추천을 받아 운영되며, 2025년에는 상반기 1명과 하반기 2명의 개인전을 지원합니다.
2025년 스타터 팩 프로젝트 하반기 참여 작가는 이지영입니다.
《프로젝트 : 경계적 영역》
글 : 김도플
작년 이맘때 즈음, 다대동의 한 초등학교에 1학년 입학생이 단 한 명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전례 없는 저출산의 현실이 지역의 풍경 속에 데이터로서, 곧 하나의 사회적 장면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알폰소 쿠아론의 영화 칠드런 오브 맨 (Children of Men, 2006)이 현실의 질감으로 스며든다. 전 인류가 더 이상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된다는 발칙한 영화적 상상은 작가 이지영의 ‘미지(未知)의 영역’을 탐구하는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 우리에게 생명은 진정으로 찬란했는가?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포항에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이지영은 자연과 생명, 과학과 윤리의 교차점에서 인류의 미래를 사유한다. 그는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먼 미래보다는 곧 도래할 현실에 주목한다. 우연히 발견한 아메바와 세포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해, 현재는 최신의 합성 생물학(Synthetic Biology)을 중심으로 생명 전반에 대한 탐구를 진행하고 있다.
작가는 생명에 대한 기술적 진보와 그에 뒤따르는 사회적·윤리적 문제를 이번 전시의 핵심 동력으로 삼는다. 회화와 설치, 조각적 접근을 통해 인류가 신의 영역이라 불리던 생명 창조의 권한을 기술로 대체하고 있는 현시대의 욕망을 추적한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여전히 인류를 위하거나, 기술 자체가 목적이 되거나, 권력과 자본, 집단 이익이 결합되거나, 그리고 욕심이거나…” 그는 이러한 기술의 진보 속에 은폐된 인간의 결핍 구조를 시각화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공기 중에 퍼지는 묘한 진공의 감각을 마주한다. 작품 재료와 디스플레이에서 비롯된 이 의도적 불편함은, 과학 기술이 약속하는 미래의 가능성과 그 이면의 예측 불가능한 위험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적 긴장을 구현하기 위한 장치다. 전시 제목에 쓰인 ‘경계’는 중의적 의미로 작동한다. 하나는 ‘잘못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조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물이 어떠한 기준에 의해 분간되는 한계’를 뜻한다.
《INO: Observation Room》은 가상의 실험실 속 인공 생명체를 응시하게 함으로써, 관객을 대상화의 주체이자 동시에 관찰의 대상으로 위치시킨다. 작가는 특별 감시 대상(Special Observation Subject)을 상상했다고 밝히는데, 이는 자연적 생명체가 아닌 존재가 불러일으키는 불안과 경외를 전제로 한다. 나아가 그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개척자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용자가 서로를 전제로 존재한다는 점과 함께 거부와 수용의 순환 속에서 두 존재는 역할을 바꾸며 사회 변화를 견인한다는 변증적 구조를 제시한다.
《MUT-004》, 《MUT: LAYERS》는 인간의 지방세포, 적혈구, 내피세포, 콜라겐 섬유 등을 합성적으로 재구성한 회화 작업으로, 인공 생명체가 자연환경과 결합하며 피부 변이를 겪는 가상적 시나리오를 그린다. 이는 인류가 가까운 미래에 직면할 환경 변화 속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생존할 것인가에 대한 사유의 장을 제시한다. 《EON 5.0》에서 작가는 장기 생존을 위한 피부 변이를 두 단계로 제시하며, 생존이 곧 변이와 동의어가 될 시대의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반복 재생되는 텍스트 “WHO AM I?”, “ARE YOU LIKE ME?”, “MY DECISIONS ARE LIMITED BY RULES” 는 인공 생명체의 인류 대체 가능성에 대한 공포와 더불어 인공지능이 자아를 획득할 때 우리가 마주하게 될 예측 가능한 무력감의 풍경이다.
전시장 바닥의 《INO: CLONE》은 포물선을 그리며 놓여 있다. ‘INO’는 불완전한 유기체(Incomplete Organism)의 약자로, 현대 생명과학의 발전 과정에서 완전한 생명체로 인정받지 못한 채 실험 중 폐기되거나 소멸된 존재들에 대한 기억을 환기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생명의 정의가 새롭게 쓰이는 시점에서, 우리가 여전히 그것을 전통적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우리가 만들어낸 과제들은 포물선을 그리고 언젠가 우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그것이 다시 포물선을 그리며 앞으로 나아갈지, 혹은 최종의 궤도에 이르러 멈출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알폰소 쿠아론의 영화에서 여주인공 키(Key)가 ‘내일 호(Ship Tomorrow)’를 기다리며 유토피아를 향해 떠나는 그 마지막 장면처럼, 이지영의 작업은 생명의 내일을 기다리는 우리의 현재를 응시하게 한다.












